문 앞에 앉은 것들에 대하여

해태 한 쌍이 지키는 자리, 그 곁을 지나치다 보면 문득 멈추게 된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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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톤 북촌의 문 앞에는 한 쌍의 해태가 앉아 있다. 처음 이 공간을 손보던 날, 어디선가 데려온 것도 아니고 새로 만들어 세운 것도 아니다. 그냥 원래부터 거기 있었다. 낡은 나무 외벽과 노란 문, 줄무늬 차양이 어우러진 골목 입구에 — 묵묵히.

해태(獬豸)는 원래 상상 속 동물이다. 옳고 그름을 안다는 신수(神獸). 조선시대에는 경복궁 앞에 세워 화재와 재앙을 막는다고 믿었다. 광화문을 지나칠 때 눈에 띄는 그 돌짐승들의 먼 친척이, 이 작은 골목 어귀에도 앉아 있는 셈이다. 규모는 다르지만 하는 일은 같다. 지키는 것.

노란 문과 줄무늬 차양, 그 앞에 앉은 해태 한 쌍

노란 문 양쪽에 자리 잡은 해태 — 이 골목의 첫 인사는 언제나 이 둘이 건넨다.

재미있는 건, 이 해태들이 그다지 위엄 있어 보이지 않는다는 점이다. 표정이 조금 멍하다. 눈이 약간 크고, 입은 살짝 벌어져 있어서 — 무섭다기보다는 '어, 왔어?' 하는 얼굴에 가깝다. 손님을 맞이하는 건지, 배웅하는 건지, 아니면 그냥 볕을 쬐고 있는 건지. 그 모호함이 오히려 이 골목과 잘 어울린다.

북촌의 골목은 원래 그런 곳이다. 딱 떨어지는 용도가 없는 것들이 자연스럽게 자리를 잡고 있는 곳. 다락방을 없애지 않고 그대로 둔 것처럼, 해태도 치우지 않고 그 자리에 두었다. 어떤 공간에는 설명보다 존재가 더 많은 말을 한다.

타일 계단 위에 앉은 해태, 나무 외벽과 햇살

햇살이 기울면 해태의 그림자도 조금씩 움직인다 — 이 집에서 시간이 흐르는 방식이다.

아침에 이 문을 나설 때와 저녁에 돌아올 때, 해태의 표정이 다르게 보인다. 빛의 각도 때문이기도 하고, 보는 사람의 하루가 달라졌기 때문이기도 할 것이다. 아침에는 그냥 지나치다가, 저녁에는 괜히 한 번 더 들여다보게 된다. 오늘 하루 어땠냐고 묻는 것 같기도 하고, 아무것도 묻지 않는 것 같기도 하다.

사실 해태가 지키는 건 이 문만이 아닌지도 모른다. 경복궁 쪽에서 내려오는 바람, 인왕산 너머에서 스미는 저녁 냄새, 골목을 지나는 사람들의 발소리 — 그 모든 것이 이 작은 돌짐승의 시야 안에 있다. 통창 너머로 기와와 산이 보이듯, 문 앞 해태 너머로도 이 동네의 시간이 흐른다.

다음에 이 골목을 지나게 되면, 잠깐 멈춰 해태를 한번 봐도 좋다. 뭔가를 기대하거나 의미를 찾으려 하지 않아도 된다. 그냥 거기 있다는 것. 오래전부터, 오늘도.

Galerie

적삼목 문과 줄무늬 차양 아래, 해태 한 쌍이 이 골목의 첫 인사를 건넨다.타일 계단 위에 앉은 해태 — 햇살이 기울수록 그 표정도 조금씩 달라 보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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